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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은하환담 - 곽재식 外

by 별나라어린이 2022. 8. 15.

* 이미지 출처 : 교보문고 홈페이지

 

제목도 마음에 들고, 한국 설화라는 소재도 마음에 들고, 참여 작가 이름 중 곽재식 아저씨 이름도 마음에 들어서 충동적으로 구입한 책이다.

 

실제로 책의 기획이 재미있다. 한번쯤 들어봤을 옛날이야기, 전설을 베이스로 작가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재창조해냈다. 익숙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시 써본다는 것 자체가 작가들 입장에서도 독자들 입장에서도 흥미가 동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기대감이 컸는지.... 실제 읽고 나서는 첫인상 만큼의 임팩트나 재미의 절반도 돌려받지 못했다.

솔직히... 여기다 이렇게 시간 내서 리뷰 아닌 감상문을 남기는 것도... 뭔가 다 읽고 너무나도 벅찬 재미와 감동을 표현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그냥.. 돈 주고 샀는데... 그냥 세월에 묻어버리기엔 책 읽은 시간이 아까워서 기록을 남긴다는 생각이다...ㅠㅠ

 

 

사실 지난 번 "오래된 신들이 섬에 내려오시니..." 책에서 느꼈던 실망감? 불안감? 같은 게,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있긴 했다. 기획은 좋으나 실제 내용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결국 읽고 나서도 아쉬움이 컸던 경험을 설마 또 할까... 싶었는데,

 

뭐 비슷했다.

한 편으로는 이렇게 구미가 당기는 기획과 주제로 원하는 만족감을 얻지 못한 아쉬움도 있고, 

또 한편으로는 '아니 왜... 작가들이 기획의 본질에 좀 더 집중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 애초에 모티브를 빼고는 정말 아무말이나 다 써도 되는 기획이었는가....' 싶은 마음에 심지어 화가 났다.

 

마치, 코스믹 호러를 기대했는데 막상 내용은 페미니즘이라든가... (특정 사상을 편들거나 까는 말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글의 기획과 다른 엉뚱한 내용이 나오는 것이 문제라는 점이다)

'샤말란 감독의 영화' 라길래 잔뜩 기대하며 갔더니 내용은 결말까지 반전 없는 페어리 테일이라든가..

그냥 단순하게, 포장지를 보면서 sf든 환타지든 기존의 장르문학적 재미를 기대하며 열었는데 막상 내용은 작가의 심오하고 뛰어난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사유의 결과물을 일장연설처럼 들어야 한다면, 실망감이 있지 않겠나?

어떤 면에서는, 작가의 역량이 조금만 더 있었다면, 조금 더 세련되고 재미있게 포장할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소재와 기획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솜씨있게 작가 스스로 말하고 싶은 의미를 충분히 담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책에 담긴 여러 단편들 중, 가장 기대했던 재미에 근접했던 이야기는 '파종선단' 이다.

 '선녀와 나무꾼'이 모티브로, 그 중심내용을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색다른 배경과 상상력으로 옛날이야기와 차별화를 꾀했으며, 성별에 대한 편견 같은 구시대적 사상 또한 설정과 표현력을 통해 개선한 것 같다. 거기다가 그 내용 자체도 충분히 흥미로워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마지막 부분이 조금 급전개 되면서 끝나버리는게... 작가가 쓰다가 힘이 떨어진건가? 싶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가장 재미있는 글이었다.

 

 '단동이'의 경우 그냥 고양이 특유의 성격이나 습성 같은 것을 활용하여 쓴, 뭔가 그럴싸한 느낌 서늘한 에피소드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읽었다가... 책 뒤에서 작가의 말을 읽고 충격을 가장 많이 받은 단편이다. 그야말로, 난 정말 이게 그 이야기인줄 전혀 몰랐다. 다시 돌아보니 군데군데 단서(?)들을 남겨놓긴 했지만... 너무도 다른 배경으로 인해 모티브가 된 이야기를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물론 '설화'라기 보다는 조금 애매한 포지션이라서 더욱 생각조차 못했을 수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아, 하고 알게 되었을 때 이마를 탁 치는 충격과 다시 읽어보게 되는 시간만큼 충분히 읽는 재미를 선사했다고 본다. 거기에 더해, 진행되는 사건 자체도 꽤나 쫄깃하게 묘사되어 있다.

 

 가장 기대가 컸던 '곽재식' 아저씨의 '토지정신'은 책의 기획에 가장 정직하게 대처한 글 같았는데... 오히려 너무 평범한 느낌이어서 아쉬웠다. 제주도 '김녕사굴'의 구렁이 설화를 소재로 하였는데, 작가 특유의 옛날 고전한글소설같은 문체와 이야기 진행으로, 옛날이야기를 향한 작가의 애정은 이번에도 역시 듬뿍 느낄 수 있었지만... 뭐랄까 다른 단편들에 비해서는 조금 발칙한 상상력이 부족한 편이었다. 김녕사굴 전설 또한 그동안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꾼들이 재생산 했던 것 같고..

 

그 외 다른 이야기들의 경우에도 적당히 이런저런 전설, 옛날이야기들을 소재로 색다른 배경과 색다른 전개를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것이 아주 흥미롭거나 솜씨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특히, 앞서 말했던 것처럼 작가가 평소 주장하고 싶은 사상이 뭔지는 알겠으나... 글 자체가 마치 그것만을 주장하기 위한 배경 정도로 전락하는 느낌이 들어서.. 심지어 어느 부분은 작가의 의도 자체에 거부감이 들 정도였다.. (반드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나는 작가의 사상에 대해서는 어떠한 평가도 하지 않으며, 나름 타당한 논리와 그 배경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인정하고, 부분적이든 전체적이든 공감할 수 있다. 문제는, 작가가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솜씨와 방식에 있다는 점이다)

좋은 소설가라면,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구축하고 그 안에 자신의 생각을 솜씨있게 녹여낸다. 그래야 독자가 자연스럽게 그 생각에 공감하며, 나아가 감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가 스스로의 생각을 말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등장인물을 뚫고 나와버리면.. 소설로써 읽기 시작한 독자 입장에서는 이야기에 몰입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정도로 대놓고 표현하고 싶다면 차라리 형식 같은거 얽매이지 않는 수필이나 잡지 칼럼 같은 것을 쓰지.....

 

  네가 뭔데 남은 재미있게 읽은 글을 이런 식으로 평가질이냐? 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게 느낀 것을 어떡하나?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나름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최대한 설명하려고 노력해봤다. 

최근 들어 SF, 판타지, 공포 등 장르문학이, 장르문학 자체가 가지는 어떤 고유의 재미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작가의 주장을 위한 도구로써의 성격이 강해져서 장르 자체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물론 작가의 생각이나 주장이 충분히 설득력있게 묘사되어, 충분히 몰입하고 재미를 주는 이야기들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글 자체의 완성도가 낮아도 장르적 재미에 충실했던 글이 많았던 예전에 비해, 요즘에는 작가들의 문장력 자체는 비교적 상향평준화 되어도 장르 자체가 가지는 재미는 줄어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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