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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언어의 정원 - 신카이 마코토

by 별나라어린이 2017. 2. 23.




애니메이션이 아닌 책으로 처음 접한 언어의 정원.


요즘 '너의 이름은'으로 더욱더 엄청난 주가를 올리는 신카이 마코토가

자신이 연출했던 애니메이션을 "소설"로 다시 낸 것을 읽게 되었다.


'소설가가 아닌 사람이 소설을? 어디 한 번 얼마나 재미있는지 읽어봐주지!' 


하는 마음도 좀 있었는데

내가 무슨 소설 평론가도 아니고 누굴 평가할만큼 대단한 사람도 아니면서

책 한 권 읽는데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이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뭐 어쨌든.




확실히 다른 소설들 하고는 좀 느낌이 달랐다.


내가 읽어왔던 다른 소설들은 보통

글을 통해 스토리와 사건, 즉 '이야기의 내용' 을 전개시키고 전달하는 데 집중하지만,

이 책은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나타나는 중요한 사건 상황을

눈 앞에 보이는 이미지로 묘사하는 것에 치중하는 느낌이다.


일본 멜로물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한여름의 비와 비온뒤 갬,

거기에 실린 남녀 주인공의 싱그러운(?) 모습들,


마치,

인물들이 어떤 인과관계로 행동을 했는지를 풀어쓰기 이전에,

그 인물이 실제 행동하는 장면이나 상황을 먼저 영상으로 떠올리고,

그 장면을 다시 글로 옮긴 것 같은 느낌이다.

뭐랄까, 그야말로 '영화'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실제 애니메이션도 한 번 보고 싶다)


그렇다고 인물의 생각이라든가,

전지적 작가가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묘하게 그림이나 영상을 보는 기분이 

책을 읽으며 종종 들었다.


글쓴이의 본업이 감독, 연출가라서 가지는 편견인가?



어쨌든 재미있다.


두근두근 거리는 청춘의 풋풋한 사랑이 조용하고 잔잔하게 느껴진다.

비오는 날의 묘사가 많아서인지, 꼭 수채화를 보는 것 같다.


이야기는 여러 챕터로 나뉘어 있고,

각 챕터마다 중심인물이 달라지며, 따라서 한 줄기의 큰 이야기를

여러 인물들의 관점에서 돌아가며 묘사한다.


사건 전개에 따라 가장 그 상황을 잘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지막까지 주요 등장인물들의 개성과 관점을 한껏 맛보며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일본의 지명이라든가, 

주인공의 심상을 전달하는 중요한 장치인 '단가(短歌)'

(짧은 노래? 시? 만엽집 같은 일본 고서(古書)에 나오는 고대가요)'

와 같은 것들이 이야기에 매우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그래서 일본색이 진한 편이다.

아, '왜색'이 진하다 같은 부정적인 느낌은 아니고, 

이국적인 느낌처럼 일본이라는 배경에 깊이 파고드는 느낌이라는 의미이다.

결국 더욱 느낌이 산다는 얘기.

만약 내가 일본사람이라면, 좀 더 현실감 넘치게 빠져들었을 것 같다.





재미와는 별개로, 한 가지 궁금했던 점이 있었는데

'언어의 정원' 이라는 제목의 의미이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는데

결국 열심히 웹서핑 해서 이유를 알아냈다.



원제는 言の葉の庭(코토노하노니와) 라고 하는데, 

앞의 '言の葉(코토노하)' 가 우리나라 말로 직역했을 때 '언어'가 되기 때문에

제목이 '언어의 정원'이 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言の葉(코토노하)' 라는 말이 작품에서 주요 소재로 쓰이는 

'단가(短歌)' 의 의미도 가지고 있으며,

사실상 이 뜻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상의 정보는 '늘어진 하늘' 님의 블로그 X, Y, Z http://zhin.tistory.com/34 를 참조함)



결국 국내에 처음 이 애니메이션을 들여올 때 

번역 제목을 잘못(?) 붙였다는 건데;;


조금은 안타까운 해프닝이 아닐까 싶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책을 읽으며 든 또 한가지 생각은

애니메이션으로는 어떤 식으로 표현했을까.. 였다.


글 읽는 내내 어떤 이미지 자체를 다시 글로 묘사한 것 같은 느낌으로 읽었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계속해서 일본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장면들을 상상하게 되었다.





세상에는 참 재능있는 사람들이 많다.

신카이 마코토도, 

한편에서는 '이 사람 만화는 결국 다 같은 내용'이라는 평도 있지만,

어쨌든 보는 사람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애니메이션을 솜씨있게 만드는 것도 모자라

글로도 내공있게 표현할 수 있다니.



늘 부럽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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