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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모나드의 영역 - 쓰쓰이 야스타카

by 별나라어린이 2017. 1. 4.




일본의 SF거장이면서 그만의 독특하고 과감한 글로 고정팬을 거느린 작가의 책이라고 하여 기대감을 가지고 읽은 책이다.

(여담인데, 작가의 히트작 중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개인적으로 애니메이션 보다가 졸만큼 그닥 재미를 느끼진 못했었지만...)



일단 재미는 있다.

근데, 뭔가...



이 찜찜하고 난감한 느낌은 뭘까...




어쩐지 농락당한것 같은 기분이다.

작가가 날 뭘 어떻게 농락하겠냐만은, 책 후반부 즈음부터는 내내 그런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사실 초중반까지는 거침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평범한 추리소설 같이 시작했다가, 

생각보다 무겁지 않은 전개에 휙휙 넘기다 보면

할아버지가 손자한테 얘기해주는 느낌(?)도 나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었을 때 느꼈던 머리 터질 것 같은 경험도 하게 된다.

종반부에는 이야기가 출발한 근본적인 세계관을 살짝 장난치듯 언급하며

(의도한 바는 아닌데 요새 자주 보이는) 메타픽션을 살짝 얹기도 한다.



하지만 주인공(?)이 본인의 정체성과 사건 전개 상, 자신의 지식을 계속해서 펼치는 걸 보고 있자니

다방면(이라 썼으나 작가의 주요 관심사라고 생각됨)에 걸친 현학적 지식의 나열 때문에

'뭐냐 이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작가가 자신의 평소 철학을 주인공의 입을 통해 열심히 설명한다는 느낌이랄까?



뭐, 작가는 당연히 작중 인물들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직접 말하기도 하고 행동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시도가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조금 강압적이라고 느껴진달까... 

'내가 생각하는 바를 여러분에게 꼭 말하고 싶다! 이걸 듣고 공감해줬으면 좋겠다! '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어쩌면 내가 잘 모르는 지식들이 줄줄이 등장하니 괜히 심술이 나서 그런 것일수도 있겠다.


"그래 작가 니 똑똑해서 좋겠다. 난 모르는 온갖 철학적 사유를 자랑하는구나~"


라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작가의 능력에 놀라움을 가지게 되는 글이 있는가 하면

반감을 가지게 만드는 글도 있다.


이 소설은 조금은 그런 쪽에 가깝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특히, 거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이 어떤 혐한 정치 평론가로부터 역사인식에 대한 질문을 듣고 다음과 같이 답변한다.

(심지어는 직접적으로 한국과의 관계도 언급되고, 지금은 정체가 탄로난 반기문 UN사무총장까지 나온다!)


"역사 인식이란 것이 당신들에게 가당키나 한가. 그걸 할 수 있는 것은 나뿐이야."


라고 말이다.



"모나드" 그 자체임을 주장하는 주인공이니 뭐 그럴 수도 있다 치자.

하지만 당최 저게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고 해도 한국 독자인 나로써는 

주인공의 입을 통해 작가가 직접 말하는 기분이 들어서 도저히...

좋게 보이지는 않는다.




결말 부에서는 열심히 벌여놓은 사건을 정리해주고자 하는데,

나름 기반이 되는 SF적 키워드도 존재한다.


이 책의 장르가 결코 SF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깜짝스럽게 개념을 들고나와서 좀 놀라웠다.

'아. 미스테리 소설일까.. 환상소설일까... 고민했더니 SF를?' 하고 말이다.


다만, 그로 인해 모든 것이 다 풀리듯 해결되는 것은 또 아니다.

나름의 이유를 붙이긴 했지만 결국은 

"그리 될 수밖에 없으니 그리 된 것이다" 

로 결론지어 버리며,

심지어는 작가 스스로도 이것만으로 부족함을 느꼈는지

메타픽션까지 살짝 끌어들인다.



글쎄다.

마무리를 짓는 데에 단지 논리적으로든 뭘로든 벌여놓은 일의 이유만 만들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작가는 생각했을까?


아니면, 이정도면 이야기의 완결성과 재미를 둘 다 잡는 마무리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을까?

난 잘 모르겠다(고 썼지만 사실은 불만족 읍읍)





생각을 좀 두서 없이 적어서 정리해보자면..


사실 위에 찜찜한 몇 가지 요소를 제외하면 확실히 재미있는 소설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와 정말 재밌었어. 독서가 즐거웠어."라고 말하기엔 망설여지는

애매한 소설.


다시 말해, 이 책은 장르가 모호해질 정도로 작가가 거침없이 달리는데

이를 충분히 커버해줄 만한 글솜씨를 발휘하고 있어서 그게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작가의 글솜씨와는 별개로 기대했던 재미가, 여러가지 이유로 끝까지 유지되지 못해서

좀 아쉽다.




그냥...복잡한 마음이 들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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